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랜도 에르난데스 (문단 편집) == 경력 == 1980년대 후반부터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활동하면서 세 차례의 [[야구 월드컵]] 우승[* 1988, 1990, 1994.] 및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경험했다. [[쿠바 프로야구 리그]]인 세리에 나시오날의 강호 인두스트리알레스(Industriales)라는 팀에서 활동하면서 통산 126승[* 10년 동안 126승 47패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 통산 승률 .728은 쿠바 혁명 이후 최고 기록.] 및 두 차례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지만, 1995년 동생 리반이 쿠바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올랜도 역시 리반의 뒤를 이어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우려한 쿠바 당국은 그를 체포하기도 하였으며[* 아예 누명은 아니고 올랜도가 메이저리그 쪽 에이전트와 접선을 하기는 했다고 알려져있다.], 1996년에는 아예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자격 정지를 당하고 만다. 결국 1997년 올랜도 역시 망명을 선택하여 보트를 타고 망명을 감행하고,[* 여담이지만 망명을 감행한 날이 [[크리스마스]]였다고 한다.] 코스타리카로부터[* 물론 보트를 타고 내린 곳은 코스타리카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아니라 코스타리카로부터 망명 자격을 얻은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망명을 승인받아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 무조건 MLB 드래프트에 참여해야했기 때문. 반면 코스타리카 쪽 망명을 얻으면 즉각 FA 자격을 얻어 자유롭게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들과 입단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연봉도 연봉이거니와, FA 자격 재취득 측면에 있어서도 망명 당시에 이미 32살이었던 올랜도의 나이를 감안하면 후자가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 망명을 승인받은 뒤[* 처음에는 미 해안경비대가 에르난데스를 그냥 불법이민자로 간주하고 쿠바로 추방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쪽 에이전트들이 적극적으로 [[로비]]를 한 끝에 망명이 승인되었다고(...)] 자유 계약자 신분으로 4년간 660만불을 받는 조건으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 33살이라는 늦깎이 신분의 데뷔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는 데뷔 시즌이었던 1998년, 지옥의 [[타고투저]] 환경이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12승 4패에 방어율 3.13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 나이 탓에 신인왕 투표는 4위에 그쳤다.] 양키스 제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1998년 월드 시리즈]]를 제패한다. 다음해인 1999년 시즌은 에르난데스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17승 9패를 기록했고 2000년 시즌에도 12승을 기록하면서 98년부터 00년까지 대망의 월드 시리즈 3연패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이미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2000년 시즌 이후 부터는 방어율이 4점대 중반으로 치솟고, 부상에 시달리면서 시즌의 30% 정도는 늘 결장했다. 결국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양키스는 그를 몬트리올로 트레이드하는데, 양키스의 혜안은 대단히 옳아서 2003 시즌 올랜도는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을 통째로 날린다. 그렇게 몬트리올에서 1년을 날리고는 2004 시즌 1년 단기계약을 맺고 양키스로 돌아오는데, 막상 양키스로 돌아와서는 또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몬트리올 팬들만 복창이 터졌다. 이후로는 내리막의 연속. 선발 및 불펜을 오가며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메츠를 오갔지만 나이와 부상 탓에 예전의 기량은 사라졌다. 그래도 그 와중에 2005년에는 다시 한 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4번째 반지를 적립. 2007 시즌 종료 후 은퇴한다. 여러모로 전성기를 지난 33살에야 미국에 진출한게 아쉬운 부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